ORIGIN

흑후추 BLACK PEPPER

NO.1

글 홍지은 김덕훈   |   디자인 박재형   |   사진 권솔 

후추의 지도는 향신료 중에서 가장 방대하고 복잡하다. 식물학적으로 파이퍼 니그룸(Piper Nigrum)의 열매인 클래식 후추(Classic Pepper)는 수확시기와 가공방식에 따라 흑후추, 백후추, 녹후추, 적후추의 네 가지 모습으로 변신한다. 같은 'Piper'에서 기원했지만 후추 열매가 아닌 다른 식물들에서 얻어지는 사촌 격의 후추들도 있다. 꼬리가 달린 쿠베브(Cubeb), 새끼손가락처럼 길쭉한 롱 페퍼(Long Pepper)가 그러하다. 이들은 형태만큼이나 풍미에 있어서도 저마다의 자유로운 개성을 지닌다. 식물학적 분류는 전혀 다르지만 동그란 형태의 알갱이 모양과 자극을 주는 특징이 닮았다고 해서 ‘후추(Pepper)’라는 이름이 붙은 유사 후추도 빼놓을 수 없다. 바스락하고 부서지는 진분홍의 껍질을 가진 핑크 페퍼(Pink Pepper), 혀를 마비시키는 마라 요리의 주인공 시추안 페퍼(Sichuan Pepper), 혼동하기 쉬운 초피(제피, Chopi)와 산초(Sancho) 모두가 이에 속한다.

'검은 황금'이라 불리며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클래식 후추(Classic Pepper)는 단 하나의 식물, 파이퍼 니그룸(Piper Nigrum) 에서만 태어난다. 키가 큰 나무나 인간이 세워둔 인조 지주대의 기둥을 타고 덩굴처럼 자라며, 포도 송이 같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다. 알알이 맺힌 열매들이 완전히 여물어 짙은 초록이 되었을 때 수확해서 가공하면 녹후추(Green Pepper), 열매가 하나둘씩 붉게 익어갈 즈음 수확하여 볕에 말리면 흑후추(Black Pepper), 완전히 붉게 익은 후에 수확해서 바싹 말리면 적후추(Red Pepper), 붉게 익은 열매를 물에 불려 껍질을 제거하고 건조시키면 백후추(White Pepper) 가 된다. 다재다능한 배우처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미각을 확장시키는 클래식 후추, 그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흑후추의 대표 품종들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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