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내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뭐 그런 것들."
총칼 대신 펜과 종이로 시대에 저항하던 드라마 속 어느 독립운동가의 고백은, 효율의 굴레에 갇힌 채 끊임없이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위로가 된다. 당장의 하루를 살아가는 데에 무관해 보이는 존재들. 하지만 무채색의 일상에 채도를 더하는 건 결국 이런 것들이다. 짧은 시 한 줄과 작은 향신료 한 알. 이토록 사소하고도 아름다운 것들이 일상에 스밀 때, 삶은 비로소 저마다의 색과 향을 지닌 풍미를 얻는다.
후추 가는 소리를 ‘작은 호사’라 부르고, 잘 모르는 낯선 세계를 기꺼이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사람. 굳게 닫힌 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아이의 손길처럼 우리를 조금은 다른 방향, 조금은 다른 감각의 세상으로 데려다 줄 안미옥 시인의 시간을 음미한다. 일상의 깊은 풍미를 완성하는 건 아직 알지 못하는 대상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가보는 애정 어린 탐색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문학 관련 인터뷰는 자주 하셨을텐데, 향신료 브랜드에서 대화를 청한 건 어쩌면 조금 생경한 제안이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뭐지?’ 싶은 마음에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웃음) 제가 후추를 좋아해서 글을 썼더니 이런 인연도 생기는구나 싶어서 신기했어요. 문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인터뷰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하게 될까 호기심이 생겨서 바로 한다고 했던 것 같아요. 재밌겠다 싶었어요.
『힌트 없음』이라는 시집에 실린 에세이 「후추」였죠. 시집의 마지막에 담긴 한 편의 산문이었는데, 일상의 수많은 사물 중에서 ‘후추’에 대한 이야기를 쓰셨더라고요. 후추뿐 아니라 시나몬, 소금 등 다양한 향신료들도 시인님 글에 종종 등장하곤 해요. 향신료에 자주 눈길이 가는 이유가 있을까요?
후추는 제가 너무 좋아해서 글을 쓰게 됐어요. 아주 작고, 소량 들어가는 건데 그에 비해 굉장히 큰 풍미를 일으키니까. 음식의 맛을 깊게 해주기도 하고, 조금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게 시랑 비슷한 것 같았어요. 시라는 것이 새롭고 낯선 것들을 만나기 때문에 어려운 마음이 드는 거거든요. 약간은 다른, 조금은 더 깊이 있는 어떤 새로움들을 만나게 해준다는 점에서 향신료가 시랑 연결된다고 생각했어요.
후추를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어느새 스며들어서? (웃음) 저는 일단 독특한 향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고수도 좋아하고, 시나몬도 좋아하고. 사실 후추에 대한 글을 쓰면서 후추를 더 좋아하게 됐어요. 글을 쓰고 나서 후추 선물을 엄청 많이 받았어요.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거기서 유명하다는 후추를 사다 주기도 하고. 적당히 아는 정도로만 좋아하던 걸 깊게 알게 되니까 그만큼 더 좋아하게 됐어요. 사람도 그렇잖아요. 그냥 인사정도만 하는 적당한 관계보다 그 사람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그 사람만의 깊이 있는 매력을 알게 되면서 더 좋아하게 되는. 모든 사물이든 관계든 깊이 알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후추를 갈아 음식에 넣을 때마다
작은 호사를 부리는 기분이 들었다.
드륵드륵 후추가 갈리며 내는 경쾌한 소리가
음식 맛을 내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에세이에 이런 부분이 등장해요. ‘작은 호사’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저는 큰 기쁨을 느낄 때에도 힘이 들더라고요. 일상의 루틴과 다르게 뭔가 커다란 게 생겼을 때,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그걸 소화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저는 그 시간이 좀 길게 필요한 편이에요. 기쁨이 큰 건 좋은 거지만 그보단 작고 소소하게 기쁨을 누렸다가 다시 금방 루틴을 찾는 게 훨씬 좋은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작은 호사들이 일상에 많은 게 좋은 것 같아요.
일상에서 작은 호사를 누리는 것, 매우 중요하죠. 시인님은 하루 중에 어떤 시간을 가장 애호하시나요?
요새는 미취학 아동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삶의 포커스가 그 아이한테 쏠려 있어요. (웃음) 아이가 아침 7시에 일어나서 9시 30분에 등원을 하거든요. 정신없이 준비시키고 나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까지가 유일하게 저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때예요. 그 시간을 가장 좋아해요. 집중도 잘 돼서 그때 글을 많이 쓰려고 해요. 아이가 보통 오후 4시 30분에 하원을 하는데, 2시쯤 되면 마음이 조급해져요. 조금 있으면 데리러 가야 하니까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 하면서. (웃음)
마음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계시군요. 그럼 미취학 아동과 함께 삶을 꾸려가기 전에 좋아했던 시간은 언제였나요?
새벽 시간을 좋아했어요. 올빼미족, 부엉이족이어서 밤에 모두 자고 저 혼자 깨어 있는 조용하고 차분한 시간을 좋아했어요. 밤에는 불을 켜놔도 세상이 전부 어둡기 때문에 고요해지더라고요. 근데 지금은 그 시간을 아예 쓸 수가 없죠. 밤에 글을 쓰려고 해도 아이가 잠에서 깼는데 제가 없으면 저를 막 찾으러 와요. 그럼 또 토닥여주고, 집중이 깨지고. 내면에 착 가라 앉아서 쓰고 싶은 문장들을 쓸 때를 제일 좋아하는데 요새는 그런 시간이 많이 없어요.

사실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지만, 아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즐겁긴 해요. 아이가 하원해서 오늘 어땠는지 쫑알쫑알 이야기할 때 저한테 주는 자극이 엄청 커요. 그 아이가 하는 말이나 커가면서 겪는 우여곡절을 제가 옆에서 같이 하는 느낌? 유년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 내 부모를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 우리가 일상이 너무 바쁘다보면 내가 일부러 문을 걸어 잠근 건 아니지만 문을 닫은 채로 귀를 막고 살아가는 때가 많잖아요. 근데 아이가 자꾸 그 문을 벌컥 열어젖혀서 “이것 좀 봐”, “이것도 생각해봐”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고요하지는 않지만 그 또한 저에게는 삶을 더 깊이 있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해서 글쓰기와 육아가 저를 양쪽에서 생각하게끔 하는 존재가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시간대’가 좋다기보다 ‘무엇을 하는 시간’인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에서도 스스로를 소개하실 때 ‘점심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점심시간을 좋아하게 된 사람’이라고 하셨던 걸까요? (웃음)
맞아요. 점심에 만나자고 하는 시도 있어요. (웃음)
전에는 경험해본 적 없던 어떤 순간들이 나에게 찾아 오고, 어느새 그 순간을 좋아하게 된다는 게 때로는 신기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내가 하루 중에 어떤 시간을 좋아하는지 아는 게 되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내 내면의 힘이 길러지는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 그 시간을 당장 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다시 그 시간을 만들면 에너지가 채워질 거라는 걸 아는 거니까 굉장히 큰 힘이 되는 거죠. 나머지 일상들을 버티고 해쳐 나갈 수 있게 해주니까.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멀리서 보면 찰나잖아요.
근데 우리의 일상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건
그런 찰나들인 것 같아요.
아주 잠깐 충족되는 찰나.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최근 좋아하게 된 시가 있는지 궁금해요. 손이 많이 가는 시집이나 특별히 애정하는 시가 있으신가요?
강성은 시인을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최근에 『슬로우 슬로우』라는 신작을 내셨는데 엄청 좋아하며 읽었어요. 요즘에는 시에 언어를 많이 쓰거든요. 산문적으로 쓰는 방식의 시들이 많아져서 그 감각이 좋기도 한데, 가끔은 많은 언어에서 내가 얻게 되는 새로운 감각이나 깊은 정서가 그 길이에 비해 뭔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강성은 시인의 시는 되게 짧아요. 짧은 시 안에 굉장히 깊이 있는 세계를 담고 있어서 오랜만에 시집을 읽고 깊게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눈 내리는 풍경이 떠오르는 시집이에요. 겨울의 시인이거든요, 강성은 시인이.

진심으로 애정하시는 마음이 느껴져요. (웃음) 이토록 마음에 드는 시를 만났을 때,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 편이세요?
일단 SNS에 알려요. (웃음) 친구들한테 이 시집 너무 좋지 않냐며 동네방네 얘기하는 스타일이에요. 강성은 시인의 시집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정말 좋은 시집은 시를 쓰고 싶게 만들어요. 마감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시를 쓰고 싶게 하는 기분을 일으키는 시집이었어요. ‘시 쓰고 싶다’, ‘너무 좋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집의 내용과 상관없이 막 떠올랐던 이미지나 잔상들을 메모해두기도 해요.
시인님께서 시를 누리는 방식이군요. 시를 어떻게 만나고, 즐기시는지도 듣고 싶어요.
시를 즐기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대신, 시적인 순간을 만나는 걸 좋아해요. 일상을 살아가면서 ‘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른 사람한테는 이상하지 않을 수 있는 게 저한테 이상하다는 감각을 주는 게 있어요. 당연한데 당연한 것 같지 않을 때 이상한 걸 느껴요. 그래서 평소에 레이더를 켜서 그 순간을 찾으려고 해요.예를 들어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라는 시집에 「주택 수리」라는 시가 있어요.
한때 제가 이사를 해야 해서 집을 엄청 많이 보러 다니던 시기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부동산이 정말 많더라고요. 치킨집보다 많은 게 부동산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부동산들을 유심히 살피다가 어느 부동산에서 ‘주택 수리’라고 써놓은 문구를 본 거예요. 부동산에서 왜 주택 수리를 하는지 이상하더라고요. 너무 이상한데? 메모! 그리고 계속 생각했죠. 부동산에 왜 그 문구가 쓰여 있을까. ‘주택 수리’라는 단어가 주는 제 안에 이상한 느낌. 고장 난 집을 고친다는 건데 그 고장남이란 무엇일지. 우리집에 수리를 할 정도로 고장 난 부분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그게 어느 공간에서의 수리일 수도 있지만 관계에서의 수리일 수도 있고, 개인 내면의 수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주택 수리’라는 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단어가 된 거예요. 그런 게 되게 시적인 느낌을 주는 순간인 것 같아요.

저는 일상에서 이상한 낯섦을 주는 순간들을 주로 시로 쓰는 편이에요. 시집을 읽을 때에도 시의 화자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나를 눈여겨 봐요. 새로운 태도를 보여줄 때 재밌어 하는 것 같고요. 착한 화자가 등장해서 착한 말을 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런데 누가 봐도 되게 뾰족하고 날이 설 수밖에 없는 화자가 등장해서 자기 주변의 세계를 약간 엉뚱한 방식으로 보여준다거나, 오히려 더 천진하고 명랑한 방식으로 가보겠다고 할 때 재밌어 하는 것 같아요. 당연히 이렇게 되겠지 싶은 방식이 아닌 화자가 자신이 갈 수 있는 최대치로 가장 먼 곳까지 간 걸 보여주는 시들이 재밌어요.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걸까요?
네. 시가 좋은 이유가 내 주변을 둘러싼 환경 안에만 있다 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해’, ‘이것 밖에는 길이 없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시에서 어떤 의외적인 모습, 다른 방향, 다른 태도의 삶을 보여주는 화자를 만나면 이게 정답이 아니고, 이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틈을 통해서 다른 길로 가볼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시를 읽는 게 재밌어요.
삶에서 시를 처음 만났던 순간, 시를 내 삶에 가까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때가 기억나시나요?
몇 단계가 있어요, 시에 점점 스며드는 단계가. (웃음) 저는 어릴 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보통 작가들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잖아요. 근데 저는 독서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책보다는 드라마를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 어떤 드라마를 보고 드라마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드라마가 너무 재밌어서.
어떤 드라마였나요?
<가을동화> 아시나요?
그럼요. 은서랑 준서, 잘 알죠. (웃음)
고등학교에 갔는데 문예부가 있었어요. 문예부에 들어가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들어갔는데, 거기는 순수문학만 하는 곳인 거예요. 심지어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고등학교 동아리인데도 백일장 같은 시험을 봐야 했어요. 시나 소설을 내야 했는데, 저는 글을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시가 짧으니까. (웃음) 내가 조금 해보면 시는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급하게 시집 몇 권을 읽고 글을 썼는데 뽑힌 거예요. 당시 문예부 담당 선생님이 굉장히 열정 가득한 문학러였어요. 한 시간 정도 하는 동아리 시간을 세 시간씩이나 저희를 붙잡고서 계속 시를 읽히고 어땠는지 물어보셨어요. 그때 처음 읽었던 시들이 기형도 시인, 김기택 시인 같은 90년대에 되게 유명했던 시인들의 시집이었어요. 시를 계속 쓰다 보니까 재미도 있고 백일장에 나가서 상도 받게 되었어요. 그래서 문학특기자로 대학에 가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시가 좋아졌던 건가요?
그때도 시가 되게 좋았던 건 아니에요. 저는 드라마를 쓰려고 했으니까 이제 시는 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대학에서 남진우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선생님한테 칭찬을 받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매일 도서관에 가서 시집을 다섯 권씩 읽으면서 시를 썼어요. 그때가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 시의 스타일이 완전히 바뀐 시기였어요. 미래파라고 해서 엄청나게 폭발적인 언어들이 막 등장하던 시기였는데, 그 시들을 보면서 제가 새롭게 눈을 뜬 거예요. 내가 언어화 할 수 없는 나의 감정이나 내면 깊숙하게 있던 어떤 마음들이 그 시들을 읽으니까 ‘어? 이건가보다’, ‘이런 문장에 가까운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확히 뭔지 몰라서 말로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시의 문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너무 재밌었어요.

이원 시인이 예전에 문지문화원에서 수업을 하셨어요. 그때 그 수업을 들었는데 지금까지 들었던 수업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수업인 거예요. 시에는 좋고 나쁨이 있지 않고, 각자 쓸 수 있는 시가 있다는 것. 전부 다른 풍미를 가진, 자기 고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수업이었어요. 그때 완전 새롭게 생각을 하면서 진짜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를 쓰면 비명도 날개가 된다."
이원 시인이 쓴 산문집 『최소의 발견』에 이런 글이 있어요. 비명은 외치는 거잖아요. 힘들고 고통스러운 어떤 일들을 밖으로 다 말하지 않고 내 안에서 그걸 참아내고 견뎌내면 그 비명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들어와서 내 날개가 되어준다는 내용이에요. 나를 일으켜 세워준다는. 그때 ‘시가 이런 거야?’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게 뭔지 너무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시를 계속 쓰게 됐던 것 같아요. 시라는 게 화려한 언어들을 써서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 게 아니라, 내 안을 자꾸 들여다보고 침잠하다보면 주변의 소란스러움이 잦아들면서 내 안의 나와 만나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때 써지는 문장들이 나를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가게 하기도 하고, 나를 일으켜 세워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시라는 게 알면 알수록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정도의 어떤 것들이 있구나 싶어요.
여전히 시가 어렵거든요. 쓰기도 어렵고 읽기도 어려운데 어떤 문장을 썼을 때 내가 나를 진짜 깊게 만났구나 하는 점 혹은 내가 어떤 세계와 맞닿는 지점이 생겼구나 라는 걸 감각하게 되는 때가 있어요. 그런 걸 한두 번 경험하다 보니까 계속 시를 못 놓고 이렇게 분주한 와중에도 써보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시인님도 시가 어려우시군요. 시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듯해요. 향신료도 마찬가지고요. 왠지 낯설고, 어렵고, 나랑은 무관해 보이는 존재들 같은 느낌이 있죠.
시도 향신료도 ‘이건 당연히 이럴 거야’라며 예상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그거 아닌데?”, “그 안에 엄청 많은 것들이 있는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웃음) 작고 소소해보이지만 내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거든요. 어떤 시 한 편이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만나게 할 수도 있고, 향신료 하나가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맛이 아닌 ‘이런 새로움도 있네?’라고 알게 해주는 지점도 분명 있어요. 저는 그게 시랑 향신료가 연결되는 지점인 것 같아요. 둘 다 너무 재밌잖아요. 후추도 여기저기 넣어보는 게 엄청 재밌거든요.

그러니까요. 후추를 맥주에 넣으셨다는 글을 보고 너무 신기했어요. 어쩌면 저보다 향신료 단수가 더 높으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웃음) 한 번 드셔 보세요. 굉장히 다르진 않은데, 약간 달라요. 근데 그 약간 다른 방식이 되게 재밌거든요. 후추를 또 어디에 넣어볼 수 있을까 상상하는 게 되게 재밌어요. 시나몬 가루를 라떼에 뿌려 먹으니까 후추도 뿌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익숙한 아는 맛에서 살짝 무언가가 가미되었을 때 약간 다른 맛을 경험하게 되는 그 재미가 있어요. 저는 그 낯섦이 재밌거든요. 사람들은 장악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할 때 불편해해요. 그 불편함이 사실 한 끗 차이로 재미가 될 수 있거든요.
시나 향신료가
우리 삶을 갑자기 180도로 바꾸진 않아요.
방향을 아주 살짝만 틀어주는 건데
그렇게 틀면 가는 길이 달라져요.
향신료도 자주 옆에 붙는 단어가 ‘낯섦’이에요. 근데 흥미로운 건 ‘낯설다’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어떤 매력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걸 불편해하면서 거부하느냐, 기꺼이 재미로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펼쳐지는 세계를 누려보느냐.
처음이 어렵지 한두 번 그 낯섦의 불편함을 약간만 견뎌보면 그 다음부터는 진짜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시인님의 글 중에서 “알 수 없지만 알고 싶은 마음에 더 좋아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어요. 모르는 세계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해버리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죠.
사람들은 안정감을 추구하잖아요. 그게 익숙하고 편안하니까. 다 알고 있는 세계를 반복해서 경험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근데 그 반복이 나를 조금은 다른 존재가 되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내 일상에 계속 조금은 다른 시간들이 쏟아져 들어와야 하는데, 그건 내가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그렇다고 모든 걸 마치 폭풍같이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요. 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지만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대상들에게 ‘한번 알아봐 볼까?’ 하는 정도로만 마음을 열어도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삶을 사는 데 있어서 나를 더 풍요롭게 하기도 하고 조금은 다른 나를 만나게 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알고 싶음에 대해서는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알고 싶음의 자리로 내가 나를 데려가야 하는 것도 있거든요.
의도적으로 말이죠?
네. 모르겠음의 상태로 나를 의도적으로 데려가야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마치 내가 다 안다는 듯이 함부로 가늠하고, 이미 이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해버리는 게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볼까?’의 자리로 나를 계속 데려가야 해요. 좋아하던 걸 좋아하고, 싫어하던 걸 싫어하며 사는 게 저는 두렵거든요. 갇히게 될까봐. 그래서 내가 안 좋아하던 것도 한 번 먹어보고, 알고 싶어하는 마음을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것 같아요.
큰 틀에서 보면 ‘알고 싶은 마음’은
‘애정’과 연결되거든요.
내가 무엇을 더 애정하고 싶은지
무엇을 더 깊이 사랑하고 알고 싶은지를
생각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시를 쓸 때 ‘충만함’을 느끼신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시인님의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평소에 ‘충만함’이라는 감각을 느끼고 있나 싶더라고요. 충만함을 비롯해서 많은 종류의 감정과 감각들이 있을텐데, 우리는 왜 그것을 충분히 느끼며 살기 어려울까요?
우리가 너무 많이 바쁜 것 같아요. 삶의 난이도가 높은 거죠. 충만해지려면 깊게 잠겨서 내 내면이 차오르게끔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걸 하기에 너무 바쁘고, 분주하고, 해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보다는 해야만 하고, 해내야 하는 감각으로 삶이 굴러가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나를 막 부품처럼 굴리게 되는데, 어느 순간 그것들이 탁 놓아지면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되고요. 바쁠 때에는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들, 예를 들어 슬픔, 속상함, 분노 같은 감정들을 꾹꾹 누르거나 제거해야만 일상을 살 수 있게 되잖아요. 근데 사실 그런 감정들이 일어났을 때 그걸 소화시키는 시간도 필요하고, 왜 그랬는지 들여다보는 시간도 필요한데, 그걸 하기 전에 또 다른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살다 보니 삶이 충만함과 멀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가 오롯이 나와 대면할 수 있을지 그 시간을 마련하는 것과 그 시간을 견디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 같아요. 오롯이 나를 대면하려는 시간 자체가 충만함의 시간이 되는 거예요.

기쁨과 즐거움, 만족감도 비슷한 위치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어떤 부분에서 기뻤는지, 즐거움을 느끼는지, 만족감이 생기는지 감정의 윤곽들을 그려내다 보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충만함의 세계가 깊어지고 넓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게 곧 일상의 풍미가 되어주는 것 같고요.
내 안에 있는 깊은 풍미를 만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일상이라는 게 내가 어떤 풍미들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채 그냥 살아가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 풍미라는 건 스스로 발견하는 것도 있지만 서로가 서로의 것을 발견해줄 수 있는 지점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혀 다른 두 대상이 만나서 조금은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 냈을 때 그게 깊이 있는 풍미를 불러 일으킨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는 것도 사실 혼자 쓰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쓰면 쓸수록 이건 사람들과 만나는 얘기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깨달을 때 그것이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내가 지금 속해 있는 세상에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헤요. 그 연결되는 감각들 속에서 일상이 조금 더 풍미 있어지는 것 같아요.
현재 시인님의 일상을 풍미의 언어로 들여다본다면 어떤 풍미가 흐르고 있나요?
팝핑 캔디? (웃음) 지금까지 내 내면을 마주하는 시간에 대해 계속 얘기했지만, 사실 요즘 제 일상은 팝핑 캔디 같은 느낌의 삶인 것 같아요. 팝핑 캔디를 입에 넣으면 타닥타닥 하잖아요. 아주 낯선 어떤 것들이 입안에 확 들어와서 타닥타닥 한 다음에 다시 잠잠해지고, 다음날이 되면 뭔가 알 수 없는 새로움으로 타닥타닥 하는 느낌이에요. 정신이 없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은 전부 녹는 시간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 시기가 계속되지는 않을 거라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상이지만 지금의 이 감각을 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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